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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강동약보에 발표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누나야! 행복하게 같이 오래 살자.

 수의사 남경호

  봄 햇살이 참 따스하다.

그런데 창밖이 많이 뿌옇다.

이런 날은 아마 그냥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보낼 것 같다.

이집의 주인부부는 창밖이 맑을 때만 우리들을 데리고 공원 산책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나에게는 누나가 있다.

사실 누나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이집도 실은 내가 태어난 집이 아니다.

나보다 세살 많은 만두라고 불리는 흰색 말티즈, 누나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유기견이었다고 한다.

한달전 내가 이집에 처음 온 그날을 누나는 잘도 또렷이 기억을 하고, 「그때는 우리 콩이 참 어리바리 했었는데, 이집에 와서 개됐네.」 라고 놀린다.

나는 두살된 갈색 치와와이고 주인부부는 나를 콩이라고 부른다.

누나는 내가 태어난 곳은 아마 강아지 공장이었을 거라고 한다.

사실 엄마가 누군지 아빠가 누군지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엄마에게서 수동면역을 위한 초유를 충분히 섭취하기도 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후각에만 의지해서 모유가 나올 젖의 위치를 겨우 찾는 상태에서 애견숍으로 팔렸을 거란다.

애견숍에서는 털색과 외형이 다양한 다른 강아지들과 거리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앞의 항상 깨끗이 치워지는 바닥에 백열등 조명을 받으면서 있었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와 향긋한 젖 냄새를 그리며 울다가 잠들기를 반복했었는데,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애견숍의 주인아저씨께서 밤에 숍의 조명은 끄고 퇴근하셨지만, 우리들이 무서워할까봐 우리가 자는 창가의 백열등은 환하게 켜두셨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강아지가 좀 더 어릴 때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까 지나가는 손님들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볼 수 있게 밤새 환하게 밝혀둔거라고 한다.

또 훌쩍 다 커버린 강아지는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사료도 새 모이만큼만 줬을 거고, 또 그래야 분변의 양도 적고 손님 앞에서 식욕도 왕성한 것처럼 활기차 보이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그렇게 해가 뜰 때부터 달이 질 때까지 나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잠을 얼핏 들기라도 할 것 같으면 길가를 지나는 꼬맹이들이 창문을 툭툭 두들겨서 선잠을 깨웠다.

애견숍 이후의 기억은 없다.

누구에게 팔렸는지, 아니면 애견숍에서 덩치가 클 때까지 팔리지 못해서 그냥 버려졌는지 모른다. 나의 거의 일년 가까운 중간 기억은 사라진 채,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기억부터 다시 있다.

「누나, 나 바본가봐」라는 나에게 누나는 그것은 해리성 기억 상실증일거라고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뇌의 이상 없이 심리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기억상실증으로, 강아지에게 중요한 과거 경험과 정보를 갑자기 회상하지 못하는 장애라고 했다.

주인 부부와 같이 산책할 때 부부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나의 첫 주인은 아마 10대 후반의 검정색 옷을 즐겨 입는 남자이고, 그 주인에게 학대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근거로는 내가 산책을 할 때 검정색 패딩 계통의 옷을 입은 중고등 남학생에게만, 평소 조용하고 순종적인 태도가 돌변해 몸의 털을 한껏 부풀리고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눈빛에 적의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집에 처음 왔을 때, 지금의 늠름한 수염이 비대칭적으로 잘려져 있었고 털도 군데군데 담뱃불에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고 한다.

보호소에서는 뜬창이라고 부르는 3층짜리 철장의 제일 밑에 층에 갇혀서 지냈다.

뜬창은 분변의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철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위층에 있는 개들이 분변을 누면 밑에 층의 강아지들은 그것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비좁은 철장에서 10여 마리가 차가운 철망의 벌어진 틈에 발이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발가락을 쫘악 벌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2번째 5번째 발가락은 벌려져 있다.

이곳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단 10일, 그 안에 누군가가 입양을 해주지 않는다면 안락사를 당한다고 했다. 철장 안에서 제한 된 음식을 조금이라도 다른 개들보다 더 차지하기 위해서 나는 싸움꾼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입양을 위해 찾아주는 인간들 앞에서는 갖은 애교를 다 부렸다. 머리를 조아리고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눈빛을 보내기를 10일째 하고 있었다.

11일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래, 안락사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런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루빨리 안락사를 당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른 동료들과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료를 다투며 먹는 중에 운명처럼 이집 주인부부가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와서 나를 입양해주셨다.

‘나처럼 잘생기고 순수 혈통의 치와와가 안락사를 당할 리가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여자 주인이 나의 이빨을 벌려보면서 “이런! 애는 대구치가 없네”라며, “어떻게 이러고도 여태 다른 개들과의 힘든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살아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빨이 없어? 아! 그래서 내가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삼켜서 배탈이 잦았구나. 그러면서도 나의 약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앙칼지게 다른 개들에게 심하게 하악질을 했었나 보다.‘

이집에 주인 부부와 처음 도착한날, 집에는 하얀색 우아한 말티즈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나의 항문과 고추 냄새를 맡고, 나에게 「너는 이빨상태로 보니 두살이네. 어디서 어떻게 지냈니?」라고 물으며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처참함과 인간 외에는 모두 내가 물리쳐야만 할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누나의 따뜻한 환대는 순간 나를 긴장 해제시켰다.

나는 더 이상 유기견 보호소의 성질 더러운 '누런 개 16번’이 아니다.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다. 그런데 가끔씩 무심결에 음식을 숨겨두는 행동을 한다. 주인부부는 나의 과거 불행에 대해 안쓰러워하면서도 결코 안아준다거나 간식을 주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를 좀 더 자제력이 있는 늠름한 강아지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럴 때, 쫌 따시게 안아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흠~‘

여러분은 누나가 그 모든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궁금해 할 것 같다.

이집 부부의 직업은 수의사라고 한다.

「동물병원 개 삼년이면 메스를 잡는다.」는 말도 모르냐면서 누나는 말하지만, 내가 이집에서 삼십년을 산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개뿔도 모를 것 같다.

누나는 내가 이집에 오기 전까지는 주인부부와 같이 10시에 동물병원에 출근해서 환견들이 오면 먼저 따뜻하게 접수를 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묻고, 항문의 냄새를 맡고, 체온을 느끼며 눈의 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야 주인부부는 강아지를 진찰대에 올려놓고 환견의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환견의 체온을 재고, 청진기로 심폐음을 들었다고 한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주인부부의 진단이 70%정도는 얼추 정확한 것 같아.」라고 말한다.

누나는 진단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도 잘 했다고 한다.

한번은 못에 찔려 발바닥의 패드가 찢어진 강아지의 발을 누나가 두어 번 핥아만 주었는데도 완전히 나았다고 한다.

그런 누나도 이집에 정상적으로 입양된 것이 아니라, 삼년전 주인부부의 동물병원에 내원한 환견이었는데, 진단명이 선천성 간문맥 단락증이라고 해서 수술 치료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예전 주인이 진료를 부탁하고는 찾아 가지 않아, 버려졌다고 한다.

물론 전화번호도 가짜였고...

주인부부의 1차 수술 후에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단락으로 인해, 육식 소화로 생긴 암모니아가 간 해독을 거치지 않은 채 심장을 거쳐 뇌로 들어가면, 가끔씩 뇌전증처럼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나는 지금도 그 맛있는 육고기를 맘 편히 양껏 먹지 못한다.

누나가 보통의 동물병원 개들과는 유난히 다르게 질병과 치료에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이유가, 자신의 병을 완전히 고쳐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수련을 했단다.

그러나 주인부부는 만두 누나의 수명이 그렇게 길지는 못할 거라면서, 병원에서 힘들게 일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차라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친구와 놀면서 여생을 편히 보낼 방안을 찾다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를 입양했다고 한다.

더 이상 동물병원에는 주인부부와 출근하지 않지만, 누나는 나와 집에서 동물병원 놀이를 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누나는 나의 항문냄새를 맡고 오줌을 입으로 맛보기 까지 했다.

언제나 누나의 나에 대한 진단은 「원기 발랄한 건강한 청춘 수컷」이라면서 깔깔깔 하며 웃었다.

그런 누나의 환한 웃음 뒤에 가려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졌다.

방구석에 머리를 박고 사색에 잠겨 있거나,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걸어 다니면서 한숨을 지을 때는 나의 맘도 아팠다.

‘누나라면 누나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나, 다시 병원에 출근해서 누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어때?」라고 물었다.

「흐흐흐, 나도 나의 병을 완치해보고자 지금까지 병원에서 여러 환견들을 진료하면서 공부를 해왔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병원에서 진료를 할 수가 없으니...」

「누나와 내가 집보다는 동물병원에서 더 행복해 한다는 것을 주인부부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을까?」

「이럴 때는 인간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구나.」

「우리가 집에 있는 것이 싫다는 것을 주인에게 행동으로 알려주면 되지」라며, 나는 앞발의 날카로운 발톱을 끄집어내어 벽지를 고양이처럼 박박 긁기 시작했다.

평소 순하고 조용조용한 나만 알던 누나에게 그런 나의 모습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잠시 지켜보던 누나가 나에게 「나는 벌써 3년 전에 이 동물병원에 버려졌을 때 죽을 운명이었는데 주인부부께서 이렇게 살려주셨는데 그러면 안되지. 콩아! 나는 괜찮아. 덤으로 산 3년인걸.」이라며 어른스럽게 타일렀다.

그렇게 한달을 집에서 누나와 나는 병원 놀이로 누나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는 다시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을 방문하는 여러 환견의 주인들이 "예전에 동물병원에서 자상하게 환견을 맞이하던 만두가 어디 갔나요? 만두가 보고 싶어요."하면서 만두의 동물병원 출근을 수의사 주인부부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누나는 한 달 만에 나와 같이 동물병원에 출근해서 환견들을 접수하고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강아지가 병원에 접수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기를 2달 정도 지나서 누나와 같은 선천성 간문맥 단락증의 질환이 있는 환견이 동물병원에 내원을 하게 되었다.

‘누나도 3년 전에는 저랬을까?‘ 그 환견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기적으로 후궁반장 강직 등의 증상을 보였다. 주인부부는 우선 수액과 관장으로 암모니아를 체내에서 제거한 후 수술을 했고 어제부터 안정을 취하며 회복실에 입원중이다.

누나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라는 주위의 핀잔을 들어가며, 주인 부부 몰래 모아둔, 흰민들레의 쓰디쓴 뿌리를 누나의 침과 섞어 씹어다가 말리기를 아홉 번이나 한 농축 액기스의 효험을 시험할 순간이 드디어 왔다.

내가 망을 보는 틈에 누나가 비몽사몽중인 그 환견의 사료에 그 액기스를 섞어 먹였더니 다음날 언제 아팠냐는 듯이 활기를 되찾았다.

수의사 부부는 어떻게 이틀 만에 이렇게 갑자기 차도가 있는지를 서로를 바라보며 내심 의아해 했고, 환견의 주인은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누나와 나는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은 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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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식객"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비인칭의 의인화 혹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다르게 바라보기의 기법으로 잘 썼구만.. 단지 기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기견의 맘과 삶을 잘 표현해줬네.. 전문전인 수의학적 지식이 없이는 쓸 수 없는 남약의 약사로서뿐 아니라 수의사로서의 깊이를 보여준 훌륭한 글이네.. 유기견에 대한 애틋한 맘이나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리 쓸 수 없지 않았을까..

                                                                                            - 박보 남성윤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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